"젖을 물려야 할 시간이 다가오면 유두통증이 두려워 크게 심호흡을 하게되고"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우리 큰 아이 때문에 정신 없이 바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어느 날, 한 통의 반가운 전화를 받았다. 최희진 선생님… 나를 요즘 정신 없이 바쁘게도 하고, 나름대로 컸다고 슬슬 내 뜻을 비껴나가고 있는 그 큰 딸을 지금껏 건강하게 커 나갈 수 있게 해 주신 고마운 분…
우리 큰 아이는 1998
년 8월 23일 무더운 여름에 세상에 태어났다. 삼성의료원에서 자연분만으로 그리 길지 않은 진통 끝에 낳은 우리 아이는 태어날 때 2.96kg, 평균체중보다 조금 모자란 예쁜 여자아이였다. 임신기간 중에, 아니 그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맘속으로 내 아이는 꼭 모유로 키우리란 결심이 있었다. 나도 친정엄마의 모유로 자랐고 왠지 나도 꼭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인지 출산준비도 아예 여분의 분유 병 한 통 조차도 준비해 놓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언제든 엄마가 옆에 있을 테니까 필요하면 그때그때 먹이면 될 요량이었다.아주 전통적인 방식…잘 때도 옆에 끼고 자고, 하루 종일 옆에 있으니 부족함 없이 먹이면 될 터이니까…
다행히 삼성의료원에선 모자 동실을 권장하는 병원이어서 큰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간호사실에서 깨끗이 목욕을 하고 난 후부터 퇴원할 때까지 내 옆에서 지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익숙지 않은 자세로 힘들게 젖을 빨리곤 했는데 다행히도 그 조그만 아이는 엄마의 미숙함에도 아랑곳 않고 열심히,정말 열심히 젖을 빨아줬다. 신생아 때는 정말 시도 때도 없이 젖을 물려야 해서 미처 분만의 피로가 가시기도 전에 밤이고 낮이고 젖을 빨려야만 했다. 모유수유에 성공하려면 그렇게 했어야만 했고, 아기가 젖을 많이 빨면 빨수록 젖이 많이 나온다고 했다. 분만 후 첫째 날 새벽에는 통틀어 채 두 시간을 못 잔 것으로 기억된다. 쉴새 없이 깨서 울고,젖 물릴 때만 잠시 곤하게 잤고, 아마도 양껏 충분히 젖을 빨지 못 했었나 보다.
퇴원 후 친정에 머물면서 엄마의 너무나도 극진한 산후 조리를 받게 되었는데,(사실 극진하다는 표현이 부족하다 싶을 정도였다) 지금도 돌이켜보면 그 때가 내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아이가 커서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고,아이와 함께 하루하루를 지내 나갈수록 ‘엄마’에 대한 사랑, 그리움, 감사함 이런 것들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의 무게로 나에게 다가 온다. 이야기가 점점 주제에서 벗어나고 있다…(역시 글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다.)
친정에서 아이와 함께 엄마의 정성스런 산후조리를 받으며 지내는 동안 심적으로는 더 할 나위 없이 편안 했으나, 육체적으로는 잦은 수유로 인한 피로,게다가 젖 물리는 방법이 잘못되어 있어서 유두에 심한 통증까지 오기 시작했다. 그 아픔은 수유를 해 본 엄마들만이 알 수 있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이자 또한 두려움이었다. 신생아라서 수유 간격은 짧았고, 잠시 아이가 잠을 자 주는 시간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러다 다시 깨어나서 젖을 물려야 할 시간이 다가오면 젖 물릴 때의 유두통증이 두려워 크게 심호흡을 해야 했고 두 눈을 질끈 감아야 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이러한 엄마의 모유 수유에 성공해야 한다는 굳은 신념과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큰 아이는 약간의 황달증상을 보이며 변을 보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걱정이 되어 나보다 몇 달 먼저 출산을 한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다. 자기는 삼성의료원에서 가정간호사 선생님을 모셨었는데, 아이를 키우는데 필요한 실질적인 부분들을 몸소 시범 보여 주시고 친절히 설명해 주시는 분이란다. 두 번 생각해 볼 것도 없이 얼른 전화를 드려 친정 집으로 선생님을 모셨다. 선생님을 처음 뵈었을 때 첫인상으로 나는 선생님이 ‘진정한 프로’이시구나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었다. 세세하게 관찰하시는 눈매며, 그 능숙한 손놀림하며, 선생님 앞에선 모든 게 일사천리로 마무리가 되는듯한 느낌… 선생님을 아는 사람이라면 내가 지금 하는 말뜻을 너무도 잘 이해할 것이다. 베테랑 선생님의 진단 결과, 우리아이는 젖 물리는 법이 잘못 되어서 아이가 만족할 만큼 젖을 먹지 못하고 있었고, 수유량 부족으로 인해 아이가 변을 보고 있지 못한 것이었다. 황달은 선생님께서 가져오신 기계를 사용해 수치를 재어 봐 주셨고, 모유 먹는 아이들한테 올 수 있는 증상이며 심한 정도는 아니고, 지켜보자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무슨 방법을 사용해도 변을 못 보던 아이에게 선생님이 시도하신 방법은 우리 모녀(친정엄마와나)에게는 너무나 신비로운(?) 일이었다. 아이의 항문에 베이비오일을 적신 면봉을 집어넣어 살살 문지르며 항문주위를 누르시니 아이가 자연스레 힘을 주더니 조약돌만한 딱딱한 변을 누는 것이 아닌가? 너무 신기했고 또 선생님께 너무나 감사했다. 그리고 나는 잘못 알고 있던 젖 물리는 법을 다시 사사 받았다. 유두 가득 아이 입에 물리면 아무리 자주, 많이 빨아도 유두통증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러 주셨다. 그 이후로 젖 물리는 시간이 행복해 졌고,아이도 더욱 더 잘 먹었다. 결코 내 젖량이 작지 않았던 것이다. 가슴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아도 참젖이라며, 어른들이 대견해 하셨고,토실토실 건강한 아이를 보고 주변에서 많이들 부러워 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모유수유의 가장 큰 장점인 ‘건강한 아이’로 지금껏 잘 자라주고 있는 것 이다..
이렇게 어려움 많았던 첫 아이 모유수유는 그 후로 1년여 동안 지속됐다. 더 오래 먹이고 싶었으나 주변에서 1년이면 충분하다는 중론이 너무 많았다. 물론 둘째 아이도 비슷한 기간 모유수유를 했고 둘째 산후조리 중 최선생님을 한번 더 뵐 수 있었다. 한쪽 젖의 어느 한 부분이 아이가 충분히 빤 후에도 부드러워지지 않고 딱딱하며 젖이 빠지지 않고 아프고 힘들었다. 아무리 유축기로 다 짜내도 시원하지 않고 계속 아파서 결국 선생님께 sos를 요청했다. 역시 베테랑 선생님께선 유축기도 다 소용없다 아이가 빠는 것 만큼 직효가 없다 말씀하시며 아이 수유 시 안는 새로운 방법 일명 ‘럭비공 자세’를 가르쳐 주셔서, 우리 둘째를 옆구리에 끼우고 열심히 빨렸더니 정말 거짓말처럼 부드러워지는 것이 아닌가? “선생님은 마술사 같아요!” 만약 내가 최선생님을 못 만났다면 과연 큰애,둘째애 모두 끝까지 모유수유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 이다.
해마다 환절기가 되면 우리 아이들 주변 친구들이 많이 아프고, 잦은 감기로 인해 거의 병원 약을 달고들 살았는데, 신기하게도 우리 큰 아이와 둘째는 왠만하면 지금도 감기에 잘 걸리지 않는다. 어쩌다 걸리더라도 약 먹이지 않고 금새 낫곤 하니, 이것은 ‘모유의 기적’이라고 밖에 부를 수 없지 않을까? 난 지금도 모유수유 예찬론자다. 주변 친구들이 굳세게 먹여 성공한 나를 보며 많이 부러워하며 시도해 보곤 했는데, 성공한 친구는 단 한 명 밖에 없었다. 요즘 엄마들은 영리하고 자식에 대한 애정도 남달라 모유수유를 많이들 하고 있는 걸로 안다. 선생님 말씀에 의하면 끝까지 성공하는 비율이 그다지 크지는 않다고 하시는데 그걸 보면 모유수유가 참 힘들긴 힘든가 보다. 내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많은 것이 있겠지만, 그 첫 번째가 바로 ‘모유’라고 난 생각한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그 어떤 엄마라도 성공할 수 있으리라. |